“정치하는 사람한테는 개인적인 소망이라는 것이 정치적 가치를 이루어가는 것하고 결합되어 있지요. 그래서 그것을 정치인의 소망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가치라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죠. 정치인의 소망은 결국 자기의 가치를 최대한 실현하는 것이죠. 그리고 이제 거기에 대해서 평가를 받고 싶어합니다.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하는 것이 정치인의 소망입니다. 평가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고요. 그래서 지금도 좋은 평가를 받고, 후대의 역사적 평가도 잘 받고 싶은 것이죠. 그런데 그 두 개의 평가가 서로 일치하는 않을 경우는 아주 많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럴 가능성은 굉장히 높습니다. 보통의 경우 오히려 시간이 흐르면서 평가가 바뀔 때가 많다고 봐요. 그래서 이제 두 개의 평가를 다 좋게 받으려고 하는 것은 여간해서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그것이 분리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현실의 평가와 역사의 평가를 다 높이 받기가 정말 쉽지가 않죠.
그런 경우를 우리가 여러 가지 상정해볼 수 있겠죠. 그 시기의 민심과 여론이 역사적인 의제와 같이 가고 있을 때, 그런 때는 현실의 영웅이 그냥 역사의 영웅이 되죠. 그런데 그 둘이 반드시 같이 가느냐? 한순간에 같이 가다가도 그 이후에 또 갈라지기도 하죠.
그렇다면 현실의 평가와 역사의 평가가 다를 때 사람(정치인)들은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 사람은 결국 역사의 평가를 선택하게 됩니다. 그럴 때 그것은 가지 가치와 일치하게 되어 있죠. 왜냐하면 자기의 가치관이라는 것이 역사에 대한 예측과 같이 가기 때문에, 역사에 대한 예측을 바탕으로 해서 가치관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럴 때에는 현재의 평가, 현재의 민심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죠. 현재에 있어서의 대중적 평가보다는 이제 좀 더 자기 가치와 자기 전략에 기반한 역사적 평가. 그런 것을 추구해가게 마련이죠.
그래서 나는 항상 ‘역사는 진보한다. 그러나 완결은 없다.’ 이 명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진보’라는 것은 민주주의의 가치에 내재해 있는 것이죠. 민주주의라는 개념 안에는 자유와 평들이라는 것이 하나로 합쳐져 서로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럼, 자유와 평등의 상태는 뭐냐? 이전에는 권력의 지배를 받던 사람이 스스로 권력을 행사하게 되는, 그러니까 형식적으로만 권력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자의 의지가 실질적으로 권력을 결정하고 권력을 행사하게 되었을 때, 그런 것이 자유와 평등의 상태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진보라는 것은 권리가 확산되어 나가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또는 권력을 분점해 나가는 과정이다. 왕의 권리가 대중에게까지 확산되어 나가는 과정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죠.
역사에서 본질적인 문제는 지배와 예속의 문제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역사에서의 핵심적인 주제는 지배 그리고 예속에서 발생하는 제반 갈등의 문제이고 모든 것의 근원이 거기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어느 때부터 권력을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역사에서 인간이 권력을 만들었고, 권력을 창조하고 사람에게 그 권력을 위임했습니다.
그런데 아주 옛날에는 누구든 지배자가 된 사람은 그 권력의 정당성을 사람들한테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근거를 대게 되는데 그것을 하늘에서 찾았죠. 권력의 근원을 사람의 위임에서 찾지 않고 하늘에 위임해서 찾았습니다. 그때부터 이제 권력이 사람으로부터 분리되기 시작한 것이죠. 그게 권력의 사유화 과정이라고 봐야겠죠. 권력의 사유화 과정이 생기면서 지배가 만들어진 것이죠.
권력의 필요성은 지금도 아무도 부정하지 못하죠. 그러니까 인간은 끊임없이 한편으로는 권력을 위임하면서 그것이 이제 하늘의 뜻이 아니라 국민에게 기초해 있다는 것을 서서히 확인해왔습니다. 그것을 선언한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근거해서 권력의 행사는 용인하되 권력에 의한 지배, 권력의 사유화를 무력화시키려는 노력을 계속해온 것입니다.
그 노력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어려운 것이죠. 권력과 지배를 분리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권력은 위임하되 지배는 거부하는 노력이 민주주의의 역사라고 봐야죠.
그런데 또 하나, 이런 것을 아이러니라고 얘기합니까? 권력의 지배를 거부하는 운동이 시장에서 시장의 권력이 탄생하면서부터 생긴 일이라는 것입니다.
시장이 형성되고 그 속에서 시장권력이 탄생하면서부터 정치권력의 지배를 거부하는 운동이 생겼는데, 지금은 시장의 지배가 새로운 지배형태로 자리 잡아 내려오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정치권력과 시장권력이 지금 서로 갈등하고 있는 것이죠. 이 가운데서 어떻든 간에 권력을 위임하고 지배를 거부하는 과정이 지금 이어져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치에서 권력의 위임은 국민주권 사상과 투표,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서 정당성과 정통성이 확보되는데, 시장권력의 지배는 어디에서 정통성이 확보되느냐의 문제가 있지요. 그러니까 정치권력과 시장권력 사이에 어느 쪽이 정통성에서 우위에 있느냐는 문제가 있죠. 이 문제가 우리에게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나는 시장권력은 수단일 뿐이고 최종적으로는 정치권력, 국가의 책임이다 이렇게 봅니다. 그래서 국가권력의 정통성이 우위에 있어야 된다고 보는 쪽입니다.
그렇다면 시장권력보다 국가권력이 우위에 서게 하는 방법은 뮈냐? 시장에서 승자와 패자를 모두 포함해서, 시장의 소비자까지를 포함해서, 이른바 시장권력의 상대편에 서 있는 소비자 권력을 조직하고 이들을 정치권력으로 묶어내고, 정치권력으로 시장을 통제함으로써 시장의 효율과 정의를 유지해 나가자는 거지요. 이제 말하자면 사민주의(사회민주주의)의 정치적인 프로세스 아니겠습니까?
시장의 강자를 통제하기 위해서 시장의 다수 소비자가 정치권력을 중심에 세우고 이 정치권력이 시장의 강자와 약자를 통합 조정하게 하는 것이죠. 정통성 측면에서도 그게 맞지요.
여기서 언론권력은 하나의 축입니다. 언론권력은 과거에는 군주나 귀족특권 세력과의 싸움에서 시민의 편에 섰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제 시장권력 편에 서기도 하죠.
이런 지배 구조상의 복잡성을 전제로 해서 우리가 이 역사의 방법을 풀어가는 셈입니다. 우리의 삶이란, 결국 권력을 위임하고 지배를 거부하는 이 메커니즘의 순환 고리 안에 포섭되어 있다는 것이죠.
그러면 지도자의 성격은 뭐냐? 권력을 왜 지도자에게 위임했느냐? 우선 기능적인 이유거든요. 안전을 보장하라, 외부의 위협과 내부의 위협으로부터. 그래서 국방과 치안입니다. 또 생산 체제를 관리해 나가는 것. 그게 경제 아닙니까. 국가와 정부는 스스로 시장의 주체이기도 하고 시장의 관리자이기도 하죠. 말하자면 심판이자 선수이죠.
그리고 이제 갈등조정입니다.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이죠. 어떤 시스템에서도 득 보는 사람과 손해 보는 사람 사이의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조정하는 것입니다. 큰 틀에서의 전선, 수많은 작은 이해관계의 전선에서 조정해 나가는 것이죠.
그 다음에 이제 총체적으로 이 복잡한 것을 전부 다 알 수 없기 때문에 큰 묶음으로서의 미래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어느 구호를 만들든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죠. 비전이라는 건 미래를 위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그 다음에 위기에서 결단하는 것입니다. 위기에서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아프간에서 인질사건이 났을 때 협상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이 결정은 마지막에 내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링컨도 전쟁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나라를 쪼갤 것이냐 통합할 것이냐를 놓고 마지막 결단을 했지요. 그때는 링컨이 스스로 최종 결단하는 것이지, 다른 누구도 그 결단을 대신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도자로서 개인적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이 비전이죠. 비전과 전략을 만들어내려면 판단력이 필요하죠. 지혜, 지식, 통찰력, 그런 것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지도자에게 핵심은 비전이거든요. 비전이 뭐냐.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이냐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비전이 자기의 단순한 희망사항이냐, 아니면 역사의 법칙과 맞닿아 있느냐, 이 점이 중요한 것입니다. 좋은 비전이라면 역사의 법칙 위에 서 있어야 하고, 그것을 전제로 선택 가능한 것 중에서 가장 가치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화려한 장밋빛 비전이라 할지라도, 오색무지개 비전이라 할지라도 역사의 법칙 위에 서 있지 않으면 제대로 현실화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비전은 역사의 법칙 속에서, 그것을 실현해낼 수 있는 전략과 결합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이 비전과 전략이라는 것이 역사의식이고, 역사를 보는, 역사를 해석하는 관점이고, 그 토대 위에 자기의 희망 사항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럼 보수는 뭐고 진보는 뭐냐? 보수는 이런 겁니다. ‘세상은 강자가 지배하는 거야. 무슨 소리들 하고있어.’ 보수를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습니다. 모든 보수는 우수한 사람, 잘난 사람, 힘센 사람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똑똑하지 못한 사람, 성공하지 못한 사람, 힘없는 사람은 시키는 대로 말 잘 듣고 있어라, 그러면 되는데 왜 자꾸 시끄럽게 구느냐.
신자유주의든 구자유주의든 다 덮어놓고 보수의 핵심은 그겁니다. 성공한 사람이 주도해간다. 맡겨라. 통째로 맡겨라.
그럼 진보는 뭔가? 진보는 ‘그게 아니올시다.’입니다. 진보는 보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 게 아니고요. 그건 기회를 평등하게 해주고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주면 우리도 다 잘할 수 있습니다. 무슨 소리 하십니까.’ 권력도 나누고 지혜도 나누고 평등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강자에게 맡겨라.’ 이 말은 보수가 지배력을 유지하겠다는 것이고, 진보는 이렇게 말하는 거지요. ‘지배하지 말고 합의해서 합시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보면, 보수 세력에는 반드시 적의 개념이 있죠. 적의 개념이 매우 강합니다. 진보 세력도 적의 개념이 있는데, 그 적의 개념이 내부에 있어요. 외부에 있지 않고. 보수 세력에게 적의 개념은 항상 외부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회의 보수 세력이 대부분 적대적인 노선을 많이 취합니다. 강경 노선, 적대 노선. 반면 평화 공존은 진보 쪽에서 많이 주장을 하고요.
진보 보수가 그런 것인데, 정치에서 그것의 경계는 이른바 역사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관점에 있죠. 그래서 위대한 지도자냐 아니냐는 국방을 확실히 하겠다. 경제를 살리겠다. 이런 기능적인 것에서는 차이가 크게 나는 것이 아니죠. 결국 역사, 비전, 가치 이것이 정치의 핵심이라는 것이죠.
그런 뜻에서 지도자에 따라 가장 크게 차이 나는 것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그 시기 역사를 정체시키느냐, 후퇴시키느냐, 진보시키느냐 하는 지도자의 판단이 가장 중요한 판단이라는 것이죠. 그것은 모두를 포괄한 것입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지도자의 도덕성에 관한 문제도 역사에 관란 관점의 문제보다는 더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역사적 판단과 역사적 선택이 중요하지요. 예를 들면(동방정책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전 독일 총리)빌리 브란트가 지금 알아보니까 아이가 몇이 있었고, 숨겨놓은 여자가 있었고, 그렇게 가정한다 할지라도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의 선택이 그 시대의 역사를 진보시켰느냐, 후퇴시켰느냐, 정체시켰느냐, 그런 관점에서 평가해야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한국의 역사가 뭐냐?’ 이거죠. 친일 잔재, 독재의 잔재, 이런 것들을 청산해가는 과정 아니겠어요?
그런데 그 독재 밑에서 특권과 유착의 구조, 부정부패, 불균형 이런 것이 생겼습니다. 부족한 정통성을 위해서 막 덧씌워놓은 권위주의도 있습니다. 권력 집중도 있습니다. 권위주의와 기회주의는 통합니다. 힘 센 사람한테 줄 서야 하니까요. 이런 것들을 청산하는 것이 우리 시기에 와 있는 과제들이죠.
특권 구조의 해체, 그게 내가 물려받은 역사적 과제입니다. 전에도 조금 했고, 조금씩 조금씩 해왔지만 지금 나한테는 거의 완결 수준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권력과 권력이 유착해서 만들어져온 특권의 구조를 해체하는 것, 이 구조 속에서 우선 권력기관 내부의 유착 구조를 해체하는 것, 정경유학을 해체하는 것, 그것이 내가 물려받은 과제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언론이 양쪽에 다리를 다 걸치고 있습니다.(웃음) 언론이 정치권력과 한 다리를 걸치고, 정경유착을 만들어내는 시장 권력에다가 또 한 다리를 걸치고, 그래서 내가 ‘이 유착 구조도 해체합시다.’라고 했죠. 큰 덩어리뿐만이 아니고 작은 것까지도, 우리 습관 속에 배어 있는 작은, ‘나를 뭘로 보고...’ 하는 이런 수준까지도 전부 다, 권위를 해체하자, 언론의 권위까지도 해체하자.
그럴 필요성이 있는 시기에 그 역사적 과제가 내게 온 것이거든요. 이걸 뒤로 미룰 것인가 안 미룰 것인가? 고민하다가 약간의 오만이라고 할 수 있는, 자만심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이런 생각이 드는 거죠. ‘내가 아니면 못할걸.’ 그래서 기자실을 개혁하고 언론 대응을 원칙적으로 했지요.
그리고 계층 간, 지역 간 불균형 해소도 큰 과제였지요. 또 도덕적으로 우수한 사회, 성숙한 사회, 이것도 우리가 부닥쳐 있는 역사적 과제라고 봅니다.
지도자의 사명은 여러 가지 기능적인 요소도 잘해야겠지만 그 시기 역사의 과제를 정확하게 짚고, 진보의 방향을 올바르게 설정하고, 그것을 위해서 전략을 가지고 노력해야 되는 것이죠.
지난 5년을 돌아보니 역사적 과제의 측면에서는 모두가 약간씩은 진보했지만, 내가 특별히 대단하게 이룬 것은 없죠. 그러나 정확한 위치에 서 있다고 봅니다. 말하자면 주제를 정확하게, 의제를 정확하게 선택해서 역사적 과제에 정면으로 정확하게 도전하고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죠.
결국 이 모든 이야기가 민주주의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리자는 것이죠. 그런데 내가 요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제 어떻게 할 거냐, 내가 할 만큼 해봤다. 정치권력으로는 할 만큼 해봤다 이거죠. 저는 민주주의가 한 단계 더 발전하느냐 아니냐는 이제는 결국 시민들의, 최종적으로 시민들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시민들에게 내가 얘기하는 것은 역사적 관점에서 선택해야 된다. 우리의 미래 정치 지도자가 내걸어야 될 비전은 경제가 아니고 도덕적으로 성숙한 사회, 민주적으로 성숙한 사회다 이겁니다.
결국 시민이 최종 선택을 하기 때문에 지금부터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은 ‘시민사회를 재조직해보자’는 겁니다. 참 그건 벙벙하기는 한데, 그러나 어떻든 지난날 노사모가 역사의 새로운 경험이었고, 그런 경험을 다시 되살려서 새로운 시민사회를 한번 조직해보자. 시민들이 조직되어서 정책의 인과관계를 정확하게, 현재의 이해관계와 미래의 이해관계 이런 것들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래서 마침내 정확하게 선택해 나가야 한다. 시민의 운동이죠.
여기에 이제 필요한 것이 정치학이죠. 정치 메커니즘에 관한 올바른 이해, 정치 메커니즘의 이상과 현실에 관한 올바른 이래, 그런 정치 전략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고, 그 다음에 민주주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 그 다음에 이제 지도자론, 크고 작은 범위에서의 지도자론, 이런 것들이 우리한테 필요한 지식들이죠.
결국 정치에서 권력의 핵심적 수단은 정보, 옛날에는 이데올로기라고 했지요. 정보와 사상입니다. 크게 말해서 정보 간에 인식과 사상이 다 들어가는 것이죠. 권력의 3대 요소는 정보와 공권력, 그리고 돈입니다. 그래서 이 사이엔 돈으로 자리도 사고팔고, 돈으로 정보도 사고팔고 합니다. 정보와 돈과 권력 사이에 상호 연결 고리들이 만들어졌을 때 지배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죠.
그런데 이 정보가 이제 통제되지 않을 때, 이 정보를 활용해 시민들이 시민적 논리로, 시민적 이론으로 무장하게 되었을 때, 권력은 시민사회로 이동해옵니다. 오프라인에서의 조직적 활동, 온라인에서의 대항적 매체 활동 등을 통해 대항 논리를 재생산해내야죠.
그래서 지배 구조에 참여하고 권력에 참여하는 논리를 만들어야지요. 지금까지 피지배 계층은 전부 다 권력을 거부하는 논리들을 주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건 아니다 이겁니다. 권력을 거부하고 권력을 부정하는 논리로 자꾸 가는데, 권력 없이는 아무것도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권력을 장악해야 합니다. 어떤 지배를 거부하기 위해서는 권력을 장악해야지죠. 권력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권력에 참여하고 권력을 위임하되 지배는 거부하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지요. 그러니까 권력을 향해서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시민들이 조직되어야 되는 것이죠.
보통의 정치인들은 권력을 정점으로 사고합니다. 그리고 권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겠다는 사고를 가지고 있죠. 보통의 정치인들은, 또한 많은 시민들이 ‘권력으로 왜 다하지 않느냐?’ 그러는데, 정치권력은 하나의 권력일 뿐이고, 하나의 과정일 뿐이고, 진정한 의미에서 권력은 시민들의 머릿속에 있어요, 진정한 의미에서.
새로운 연대도 필요합니다. 지금 시장 경쟁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있거든요. 뒷거래 시대에 성공한 사람들이 아니라, 시장경제에서 성공한 새로운 시장의 주류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과 더불어서 새롭게 어떤 새로운 세력을 한번 묶어보려는 모색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세계 역사에서 영국의 신사 계급이 사실은 영국의 민주주의의 발전에 상당히 큰 역할을 했던 것처럼 관용의 정신과 타협을 아는 사람들과의 연대가 필요합니다. 시장에서 성공한 사람들 가운데 지금도 내가 만나서 ‘종부세 냅니까?’ 이러면 ‘아, 내죠, 낼 건 내야죠.’ 뭐 이런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리고 우리 사회가 그렇게 보수 일색은 아니니까요.
결국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행동 속에, 궁극적으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다른 메커니즘으로서는 우리가 도저히 이길 수 없어요.
여기 아무리 좋은 차를 만들어놓아도 운전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자동차도 흉기가 될 수 있듯이, 어떤 국가적 시스템을 만들어 놔도 그 시스템을 운용하는 공무원들이 민주화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민주주의 선거제도, 정당제도를 만들어놔도 정당을 운영하는 사람이, 선거제도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제대로 하지 않으면 못하는 거 아닙니까? 그걸 제대로 하게 하는 일이 지금부터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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